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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05-07-05 (화) 1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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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른한 오후에 가만히 있자니...
1.
남편은 참 괴짜다.
나는 기상청에서 발표한 건조주의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대청소를 하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먼지가 풀풀 날릴판인데, 거기다가 한 술 더떠서 대청소를 한다고요.
남편은 어차피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청소는 무슨 청소. 먼지 나니까 그만두고 나랑 놀자" 하는 거였다.
내가 뭐 앤가? 놀자고 하게.
"당신과 노느니 운동이나 하겠어요" 하면서 총채를 들었다.
왠 총채냐고요?
이것은 이 집안의 유물이랍니다.
남편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사용하시던 거라나요.
어떤 용도로 쓰여졌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총채는 여러번의 수리 끝에 지금까지 왔다고 합니다.
남편의 괴짜 근성이...
2.
평소에는 잘 듣지 못했지만 이럴 때라도 듣자 하고, 집이 떠나가라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나만의 에어로빅을 시작하였다.
결국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한다는 말이,
"음악 좋고, 리듬 좋고, 율동도 좋고, 분위기가 괞챦으니 신문이나 봐야지" 하면서
약올리듯이 양팔을 있는대로 크게 벌리면서 보고 있다.
어쩌면 저런 남편이 다 있을까.
내가 뭐 때문에 자기한테 시집왔는데...
온갖 분위기로 나를 꽉 잡아 놓고서는, 이제와서 이런 분위기가 어떻다고?
오늘 같은 날 같이 나가자고 하지는 못할망정 , 청소하는 것도 도와주지 않고, 한다는 것이 청소하는데 신문을 봐!
인간이.....
3.
신문 색깔이 뭐저래!!
어휴 ~~ 옛날 성질 같았으면 한방에 끝나는 건데.
어른이 참아야지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워 씩 웃는다.
"청소하는 것이 즐거운가 보군. 앞으로 당신 살 좀 뺄겸 자주 하십시요.
저런 모습이 될 줄 알았다면 그 때 그냥 내버려 두는 건데.
기쁜 마음으로 구제해 주었는데, 영 후회가 되는군"
"뭐라고요!!!"
"아냐! 당신 몸매가 참 건강하다고 했어.
얼마나 우람하고 건강해 보여.
이런 바람에도 날아갈까 겁나는 날씬한 여자보다는 낮지." 하며 내 가슴에다 후 하고 바람을 분다.
몸매가 건강하다고?
우람하다고?
치.
솔직히 말하지, 그렇게 좋은 말로 한다고 내가 못 알아 들을까봐.
아냐.
사실 나 정도면 표준이지 뭐. 어디가도 내가 빠지지는 않지.
"그럼 당신은 어디가도 빠지지 않지~~~"
치.
이제 아예 내 마음을 다 아는구만.
자기는?!
내가 그때 왜 저사람 속임수에 넘어 갔는지 몰라.
뭐 결혼하면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는 둘 째 치고 저쩌구나 잘 해줬으면 좋겠네.
어쩌구가 뭐고 저쩌구가 뭐냐고요?
아 왜 결혼하기 전에 남자들이 하나 같이 장담하는 것들 있쟎아요.
그런거지요 뭐.
4.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어느새 남편 있는 곳까지 왔다.
하긴 조그만 집에서 가봐야 얼마나 가겠냐만,
요 남편은 전혀 비켜줄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심통이 나서 신문을 총채로 툭 쳤다.
옛날 같았으면 그냥 확...
당연히 떨어지는 신문 넘어로 남편 특유의 표정이 시작된다.
인상 한 번 탁 쓰고 점차로 미소로 바뀌는 것.
그 표정은 정말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고는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물론 이번에는 나를 어떻게 하면 약올릴까 하는 심보로 그 표정을 지은 것이기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오히려 내가 인상을 써야 할 판이니까.
그런데 다시 신문을 줍더니 계속 읽기 시작한다.
갑자기 큰소리가 나는 것이다.
"아니 이럴수가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일어날 수 있지?
10년전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어떻게..... 세상에. 나아쁜 놈들.
아니 여자구나! ......."
5.
느닷없는 소리에 나 역시 놀라고 또 뭔가하여 신문을 들여다 보았다.
"애들은 보면 안되!" 하면서 안 보여 주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당신은 애라고"
"제가 왜 애에요? 우리 애가 지금 당신 만한데" 하면서 나도 큰소리를 쳤다.
도대체 이 남자가 나를 뭘로 보는거야.
남편은 재미있다고 깔깔 대는거였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온다 이거지.
나의 자존심 상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보군.
가뜩이나 스팀이 팍팍 오르는데, 좋아 한판 붙자, 하면서 신문을 뺏으려고 돌격 앞으로 하였다.
그랬더니 오히려 신문을 내 눈 앞으로 밀고 오면서 깔깔 웃는 거였다.
이 남자가 계속 나를 약올려.
오늘 건조주위보인데 메마른 땅, 땀으로 먼지를 가라앉힐 정도로 맞아봐라, 하면서 총채를 들고 다시 돌격하였다.
그랬는데도 계속 이 남자는 신문을 내 눈 앞으로 밀고 오면서, 이번에는 拍掌大笑를 하는 거였다.
아냐,
이거는 박장대소라고 표현할 만큼 고상한 상황이 아니야.
그냥 웃음이야.
아냐 이런 생각 할 여유도 없어, 하는데 눈 앞에 신문이 너무 가까이 와서 더 이상 앞으로 밀고 나갈수도 없었다.
기가 막혀서 웃고 있는데
"이제 웃냐? 어휴! 나는 아까부터 보라고 눈 앞에 보여 줬더니 이제 보고 웃냐?" 하는 거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하면서 신문을 자세히 보았다.
... ??? !!!
"화화화" 이 웃음은 호호호와 하하하가 합쳐진 나의 웃음 소리다.
참내.... 내가 졌네.... 그래도 나는 못 참아. 돌격 앞으로.......... ♡♡♡
.......
그 신문은 10년 전 신문이었다.
* 930421 오후 4시 15분 라디오에서 나오는 슈베르트의 "숭어"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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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날짜를 보니 거의 12년 전에 쓴 글이었다.
당시 십자군 전도대(목사안수 받기 전 특수목회하는 과정) 시절에
첫 사역지에서 담임 여전도사와 갈등이 있어 힘들어 하던 차에
차를 몰고 인천 송도 앞 바다에서 노을이 일찍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노트북에다 끄적 거리고 쓴 글이었다.
물론 10년 후의 행복한 생활을 ^^ 생각하며...
지금 12년이 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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